책 | 편의점 인간 | 무라타 사야카
정상적인 삶은 무엇인가
언젠가 만난 어떤 외국인이 그랬다.
"한국 사람들은 다 똑같아. 머리스타일도 똑같고, 옷 입는 것도 똑같고, 사는 것도 다들 같아"
칭찬은 아니었다.
그가 말한 '똑같다'는 건 한국 사회에서 '정상적인 삶'으로 여겨지는 것과 같다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.
정규 교과과정 속에서 충실히 교육을 받아 좋은 대학에 입학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것.
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고, '정상'인 사람들이 낙오자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회.
기묘하게도 책 속의 세상과 너무 닮아 있었다.
그리고 외부인의 시각에서 그 세상을 바라보니 이제 누가 정상이 아닌건지 알 것 같다.
형광펜
- 그때 나는 비로소 세계의 부품이 될 수 있었다. 나는 '지금 내가 태어났다'고 생각했다.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내가 바로 이날 확실히 탄생한 것이다. (p. 31)
- 내 몸 대부분이 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, 나 자신이 잡화 선반이나 커피머신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. (p. 35)
- 같은 일로 화를 내면 모든 점원이 기쁜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직후의 일이었다. 점장이 버럭 화를 내거나 야간조의 아무개가 농땡이를 부리거나 해서 분노가 치밀 때 협조하면,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모두 내 분노를 기뻐해준다. (p. 43)
-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,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.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,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'점원' 이라는 균등한 존재다. (p. 54)
- 점장도, 점원도, 나무젓가락도, 숟가락도, 제복도, 동전도, 바코드가 찍힌 우유와 달걀도, 그것을 넣는 비닐봉지도, 가게를 오픈했을 당시의 것은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. 줄곧 있긴 하지만 조금씩 교체되고 있다. 그것이 '변함없다'는 것인지도 모른다. (p. 70)
-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.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. (p. 102)
- 손님들만은 변함없이 가게에 오고, '점원'으로서의 나를 필요로 해준다. 나와 같은 세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모두 차츰 '무리의 수컷과 암컷'이 되어가고 있는 불쾌감 속에서 손님들만은 나를 계속 점원으로 있게 해주었다. (p. 155)
- 여동생은 시라하 씨를 야단치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것 같았다. 야단치는 건 '이쪽'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. 그래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지만 '저쪽'에 있는 언니보다는 문제투성이라도 '이쪽'에 언니가 있는 편이 여동생은 훨씬 기쁜 것이다. (p. 161)
- 인간인 나에게는 어쩌면 시라하 씨가 있는 게 더 유리하고, 가족도 친구도 안심하고 납득할지 모르죠. 하지만 편의점 점원이라는 동물인 나한테는 당신이 전혀 필요 없어요. (p. 193)